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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승객 115명을 태운 대한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방콕과 최후 교신 뒤 실종되었다. 11월 30일 현지 조사반을 급파한 관계 당국은 인도양과 벵골만 상공에서 공중 폭파 가능성 시사.

 

사건 발생 이후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은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린 요주의 인물 남성 1명, 여성 1명을 검거하였으나, 음독자살을 기도하였다고 발표.
12월 2일 청와대는 대북 안보 체제 강화와 선거방해 책동에 대한 엄단을 지시.
12월 7일 바레인에서의 수사를 종결하고,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개최 방해 공작으로 사건 분석.
12월 9일 현지조사단 철수 결정.
12월 11일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나, 12월 15일 미국 국방부는 대한항공 858편의 잔해가 아니라고 보고함.
12월 16일 대통령 선거 실시. 안기부 주관으로 하치야 마유미 신상 확인 조사 착수.
12월 19일 건설교통부에서 탑승객 119명 전원 사망 공식 발표.
1988년 1월 15일 어느 한 여성이 TV 기자 회견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김현희이며, 김정일의 사주로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개최 방해와 대통령 선거 혼란 야기, 대한민국내 계급 투쟁 촉발을 위해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하였다고 발표.
사건 당시, 유고슬라비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폭파범들의 당시 종적을 조사해서 미국 측에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1989년 2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은 김현희에 대해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
1990년 3월 중순 858편으로 추정되는 잔해 발견.
1990년 3월 27일 김현희에 대해 대법원의 사형 선고.
1990년 4월 12일 김현희에 대한 사면 조치
1991년 6월 2일 김현희는 수기집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발간.
1992년 7월 1일 김현희는 수기집 《사랑을 느낄때면 눈물을 흘립니다》를 발간.
1997년 12월 28일 전직 안기부 직원과 김현희 결혼.
2004년 3월 23일 국가정보원은 대한항공 858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책 《파괴공작》의 출판사 창해 대표에게 10억원 손해배상 소송 제기.
2004년 5월 22일 ~ 23일 KBS는 〈대한항공 858편의 미스터리〉를 방영하여, 수사 결과에 대한 거짓 부분을 밝힘.
2004년 6월 28일 법원은 국가정보원의 《파괴공작》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판결.
2004년 12월 15일 서울지검 중앙1부는 유족들이 낸 기록 공개 소송과 관련해 1심 재판부가 공개하라고 판결한 5천여쪽의 기록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발표.
2012년 6월 17일, 2013년 1월 15일 : 김현희, TV조선과 MBC에 각각 출연하여 대담 형식으로 인터뷰.
2016년 4월 30일 기준, KE858편은, 대한항공의 베이징을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하는 편명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건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수사 결과

 

사건 당시 정부의 수사 결과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대한항공 보잉 707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공중 폭파되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하였고, 이 사건은 1987년 10월 7일 김정일의 명령에 의해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을 방해하고, 대한민국 내 대정부 불신을 조장을 목적으로 하였다. 여객기 폭파후 두 폭파범은 1987년 12월 1일 바레인 공항에서 조사를 받던 중 김승일은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으며, 김현희는 대한민국으로 압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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